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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신건강복지법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은상] 회복

  • 작성일2017-07-14 14:00
  • 조회수789
  • 수상자김O현

<회복>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은지 올해로 꼭 18년이 되었다. 나의 병명은 정신분열 지금 개정된 이름은 조현병이다. 조현병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관계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이 병이 발병 되었을 때 왜 하필이면 내가? 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엄마와 아빠 모두 내가 정신분열이라는 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고 약을 먹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과 상처를 안게 되었다. 내가 정신이 멀쩡하게 되었을 때는 그런 상실감 때문에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했고 어떻게 하면 전처럼 생활하고 아프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약을 먹고 입원을 여러 차례 해본 결과 나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이 재발하여 직장에 취업을 해서 일을 다닐 때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병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약물에 의존하여 병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가 적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1999년도에 처음 발병한 이후 장애인 복지관을 통하여 회사도 다녀보고 사회생활에 발을 디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스트레스는 나를 다시 재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결국 회사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에겐 큰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가지 않고 정신장애인이 되어 보건소를 나가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 하게 되었을 때 보건소에 근무하셨던 김현정 사회복지사님이 나보고 구청에서 공공근로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셨다. 그 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구청 공공근로 신청을 했고 나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7년 동안 공공근로를 하게 되었다. 공공근로는 9개월 일 하고 쉬는 시간이 3개월 있어 그 중에 다른 곳을 취업하려고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는 구청 직원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일을 잘 한다는 칭찬도 들었고 인정도 받았다. 꾸준히 돈을 벌어 집안에 도움이 되니 엄마도 많이 기뻐하셨고 아빠도 좋아하셨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나도 사회에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았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서른 살부터 구청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니까 좋긴 좋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으니까 당연히 입원도 안하게 되었고 병이 재발 되지도 않아서 약물로만 치료가 가능했는데 너무 편하게만 지내다 보니 앞날에 대한 계획이나 목표가 없이 그날이 그냥 그날이었다. 그때는 그게 잘못하고 있는 것인 줄은 몰랐다.

그렇게 지내오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은 옛날에 지어진 집으로 매우 낡고 허름했다. 더군다나 지붕이 많이 약해져서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면 매우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울,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날 살고 있던 집 마당 한 쪽에 마련되었던 방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참사를 겪었다. 우리는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 어느 때 또 다른 방 어딘가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도움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구청과 주민센터에 찾아가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그런 어려운 일들이 있은 후 우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고, 은평구에서 살다가 마포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임대주택에 자리가 있어 급격하게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2013년 이사를 와서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 지하에 살게 되어서 화장실 변기, 베란다와 주방 하수구에 물이 역류하고 복잡한 문제가 생겨서 나는 그 상황에 견디지 못하고 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빠가 알코올중독자 이셨기 때문에 그 부분도 크게 작용을 했다. 아빠는 술 주사가 심하셨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트레스가 다른 문제에서 생기니 재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포구에 이사 온 이후로 세 번이나 입원을 했었다. 사실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나이도 많이 먹었고 수급자인 동시에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이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주저앉을 수많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사회에 나가고 싶었고 집에서만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이후 일을 다시 해보려고 취업도 도전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고 스트레스로 인하여 또 다시 병원에 들어 갈까봐 조마조마 했다.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나는 정신장애인이라는 멍울을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고 있었고 피해망상도 심각하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그러지 말고 그냥 열심히 살아보자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살려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 즈음 운 좋게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을 여럿 만나는 기회가 생겼고 그 인연들 중에 연결이 되어 인터넷 방송 텐데시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문학교실이라는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제법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2011년도에는 양주에서 개최한 양주김삿갓전국문학대회에 나가서 수필부문 장원을 하게 되었고, 그 해 서울에서 개최한 전국김소월백일장에 나가서 수필부문 준 장원을 하게 되었다.

상을 받게 되고 나의 장점을 살리게 되어 마음이 매우 든든해졌으며 나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았다. 그리하여 2011년도에 한국산문으로 등단도 하게 되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문학교실 뿐 아니라 인터넷 방송인 텐데시벨에도 열심히 참여하여 올해까지 잘 참석하고 있으며 팥빵에서 텐데시벨을 검색하여 들으면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생활을 이야기 하는 인터넷 방송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사회에 구성원으로 복귀하며 나 자신의 장점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나 자신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꿈을 꾸게 되었다. 기독교인이라서 주일날 교회에 가면 늘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언젠가는 제가 꼭 책을 낼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늘 마음에 그런 꿈을 품고 있었기에 입으로 속삭이곤 했다. 나는 꼭 책을 낼 것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빠른 시간 내에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고 발을 넓혔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가 꿈꾸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루어졌다. 텐데시벨을 하면서 만나게 된 출판사 대표님을 알게 되었으며 그 선생님이 모아 놓은 그러니까 그동안 써 놓은 글들이 있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블로그에 써 놓았던 글들이 있다고 대답을 하였다. 선생님은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서 그럼 한 번 자신에게 그 시들을 보내 달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일사천리로 그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시들을 정리하고 수정해서 김소옥 선생님께 이메일로 나의 작품들을 보냈더니 얼마 후 답변이 왔는데 시들이 참 괜찮다며 출판을 해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뛸 뜻이 기뻐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길로 모든 일들이 착오 없이 진행되어 나는 드디어 시집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으로 발행되었긴 하지만 출판일로부터 현재까지 베스트 순위에 진입해 있다. 리디북스에서 지난주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5월 1일 전 4월 마지막 주에는 베스트에 진입을 못했지만 발행일로부터 지금까지 4월 마지막 주만 빼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물론 시 분야에서 말이다. 그리고 리디북스 안에서 만이다. 하지만 정말 기분이 좋고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기쁘다. 나는 그렇게 소망하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다.

정신장애인에서 시인으로 발전되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조난을 당한 사람처럼 나는 그동안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아빠가 돌아가셔서 이별을 겪어야 했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정신적으로 조금은 침체기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시인이 되었고 약은 먹고 있지만 나 자신을 잘 컨트롤 하고 있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고 도전하는 의식도 생겨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요즈음엔 독서지도사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다. 문학심리상담사도 공부하는데 그쪽은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하는 필요성이 있어 언젠가는 빠른 시일 내로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고 싶다.

나는 정신장애인이지만 살아 숨 쉬는 한 인격체이고 한국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를 누려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매우 잘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혹 이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정신장애인이 어떻게? 정신장애인이 할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해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열심히 공부할 것이고 꿈을 향해서 계속 도전할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약물이 조정된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넘어지거나 후회하거나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회로 복귀했고 회복되어 가고 있다. 나는 정신장애인이지만 할 수 있다! 라는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어느 덧 5월! 푸르름이 내게 말을 건넨다. 미현아! 너는 지금 푸르르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라고 말이다. 나는 죽기 전까지 푸를 것이며 회복하여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꼭 시인으로 인정받고 정신장애인으로서 사회에 복귀하여 잘 살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

무슨 사건이나 사고가 생기면 뉴스에서는 꼭 정신 감정을 해 볼 것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위험하거나 불완전한 사람은 아니다. 사회에서는, 그리고 방송에서는 그 점을 잘 인식하여 개선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정신장애인 보다는 잘 살아가고 있는 정신장애인도 초점을 맞춰서 사회에 알리고 보도 하여야 할 것이다.

가슴이 뛴다. 또 다른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먼 미래를 상상한다. 정신장애인으로서 작가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며.

  • 담당부서정신건강정책과

  • 전화번호044-202-3857

  • 최종수정일2023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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