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서브메뉴 바로가기

정책

정신건강복지법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가작] 종말, 그 후

  • 작성일2017-07-14 10:39
  • 조회수395
  • 수상자임O환

<종말, 그 후>

2012년 세계는 종말 할 것인가 라는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매스컴에서도 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회사를 잘 다니던 직장인이었던 나는 남들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스트레스를 받고 과음을 했으며 여러 문제로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나는 조현병을 앓게 되었다. 그랬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조현병 초기에 나는 병을 몰랐다. 환청과 망상에 시달렸다. 남들이 내 흉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들이 내게 암시적으로 무슨 일을 시킨다고 생각했다. 회사 중역들이 모인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횡설수설하며 큰 실수를 하기에 이르렀고 회사 사람들의 권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강제 입원을 하지 않았지만 상태는 좋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매주 통원치료를 받았다. 조현병의 원인은 환경적 요인, 유전적 요인 등이 복합된 것으로 조현병은 마음의 병이 아닌 뇌의 병이라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병에 대한 인식, 병식이 없었던 나와 가족들은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부지게 먹으면 고칠 수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다. 심지어 약을 끊고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약을 먹으면 끊임없이 불안해지고 몸이 떨렸다. 더군다나 약을 끊을 생각에 제대로 먹지 않았다. 당연히 호전될 리가 없었다. 더욱이 이 모든 사태가 내 탓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현병은 우리가 부딪치는 다른 병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이다. 내 탓이란 생각을 하면 더 위축되고 재활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주변엔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친척도 만나지 않고 숨어 지내야 했다. 하루아침에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 그것은 나의 종말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조현병 환자들 중 몇몇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수명이 짧은데 자살이 큰 역할을 한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듯이, 희망 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강물이 따뜻한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도 그런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죽음보다 삶을 선택했다. 그것은 늦었지만 새로운 시작이었고 내 삶은 보너스 기간을 얻은 셈이었다.

재활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무작정 걸었다. 하루에 10킬로미터를 걸었다. 불안해서 뭔가를 집중할 수가 없었고 걸어야만 했다. 약은 부작용 방지제가 두 개 늘었다. 약값은 비쌌다. 나중에 산정특례라는 제도가 있어 약값을 할인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당시에는 몰랐다.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개인병원으로 옮겨 복제 약을 먹어야 했다.

재활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회와 부딪치는 것이 필요하다. 낮병원이라던 지 정신건강증진센터, 사회복귀시설 등이 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것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만 지내지도 않았다. 낫다고 생각되는 길을 택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처음엔 행동이 둔하고 어려웠지만 차츰 적응해 갔다. 봉사활동 중에서 노력봉사라고 일을 하는 것이 있다. 일이 그렇게 고되지 않을뿐더러 일반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처음엔 어눌하다던가 어리바리하다는 말은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몇 개월 후 처음으로 뮬류센터 포장 알바에 도전을 했다. 조현병에는 망상, 환청이라는 양성 증상이 있지만 한편으로 음성 증상이라는 것이 있다. 씻기를 귀찮아한다던가 행동이 굼뜨고 의욕이 상실되는 증상이다. 그런 증상 때문에 처음에는 느리다는 소리도 들었다. 몇 개월 간의 물류센터 알바는 실패로 끝났는데, 스트레스를 받자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던 탓이다.

다음으로는 연고가 있는 지방에 가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사는 단순반복 작업이다. 그리고 무언가 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경운기를 몬다던지 하는 작업은 할 수 없었지만 농사를 도와주며 인지능력을 많이 회복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현병 환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그것은 경력의 단절이다. 조현병으로 투병을 한 기간 동안 경력이 단절되어 버리고, 정신적인 문제로 사고를 친 경우엔 이전 직군으로 돌아갈 수 없다. 병을 밝히는 건 더욱 어렵다. 조현병은 100명중 한 명이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인데, 우리 주변에 조현병에 걸린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는 다들 병을 숨기고 있어서다. 조현병 환자가 사람을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했다는 기사가 많이 보도되는데, 누가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까? 하지만 실제로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다고 한다.

경력이 단절되고, 나이가 들어 나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처음으로 알아본 것은 법무사 시험이었다. 나는 다른 것들은 줄곧 했지만 어려서부터 영어만은 젬병이었다. 법무사 시험에는 다행히 영어 과목이 없었다. 그래서 알아봤지만, 요즘 법무사 시험은 사법고시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것이었다. 경쟁의 출발점이 달랐다. 그래서 빠른 포기.

다음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선택했다. 다들 어렵다는 9급 공무원 시험의 세계에 합류한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이야기가 합격으로 흘러갔다면 좋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자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머리가 깨질 듯 했고 재발될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얼마 만에 시험을 포기한 나는 다시 경력 단절의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최선 다음에는 늘 차선이 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1년의 기간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인터넷 강의는 들을 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급 자격증을 땄고 내친김에 1급 자격증까지 땄다.

이렇게 2012년 이후 5년이 흘렀다. 여러분이 내 글을 귀찮게 읽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글을 쓰는 이유는 조현병 환자에 대해 생각을 달리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으로 살다가 난데없이 병을 앓게 된 사람이다. 사회에 증오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증세로 인해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악플들과 함께, 조현병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는 것도 알고 있다. 조현병이라는 걸 밝혔을 때, 주변 사람에게 “조현병 환자는 사람 죽여도 된다면서?”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데 조현병 환자가 미친 건 맞지만 마음까지 비뚤어진 건 아니다.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재발을 막기 위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빼곤 말이다.

끝으로, 조현병을 앓는 분들에게 자조집단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자조집단의 도움을 받는데 심적으로 큰 의지가 된다. 현대인은 누구나 외롭다. 하지만 특히 속 이야기하기 힘든 환우들에게 자조집단이 있다는 건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자조집단을 통해 도움을 받고 사회에 떳떳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다.

  • 담당부서정신건강정책과

  • 전화번호044-202-3857

  • 최종수정일2023년 08월 08일

홈페이지 기능오류신고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